[국민일보] [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심재찬 연출 연극 <앙상블> ‘존재와 부재의 경계’
- 작성일2022/04/25 15:50
- 조회 415
‘나는 발달 장애인 엄마입니다’ 발달 장애인 부모 500여 명이 장애인의 날 하루 앞두고 눈물의 삭발식을 하는 장면이 뉴스로 보도되면서 먹먹하고 뭉클해졌다. 국내 성인 발달 장애인은 16만 명에 이르는데도 보호센터와 사회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시설은 부족한 실정이다. 그 책임을 안고 살아가는 가족들은 윤석열 정부에 ‘장애 지원 체계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눈물의 삭발식을 했고 발달 장애 아들이 써준 손 편지가 전파를 타면서 한국 사회 장애인 환경에 공감하기 충분했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이 장면과 오버랩 되는 연극 한 편이 있다.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앙상블>(4.7~5.8, 파비오 마라 작, 임수현 번역)은 30대 지적 장애 아들의 두고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다. 극단 산울림이 창단 50주년 기념 공연(2019)으로 심재찬 연출이 국내 초연을 하면서 발달 지적 장애를 두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3년 만에 산울림 소극장으로 돌아온 <앙상블>은 엄마(이자벨라)역에 예수정에서 영화, 드라마, 연극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경순으로 교체되었어도 감동은 여전하다.
30대 장애 아들을 향한 헌신적인 모성애와 극 중 지적 장애를 겪고 있는 미켈레(유승락 분), 딸 산드라(배보람 분)를 통해 애잔한 아픔과 사랑을 사실적인 무대로 우직하게 그려내면서도 한국 사회 장애 환경과 인권, 탄력적인 고용 문제를 되짚어 볼 수 있게 한다. 지적 장애를 안고도 노모를 위해 달리는 40대 ‘맨발의 기봉이’는 200만을 넘어섰고 5살 지능의 20살 청년 초원이 ‘말아톤’은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라는 대사를 유행시키며 감동을 준 영화들이라 할 수 있다면 연극 <앙상블>은 상처가 베인 내면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선물 같은 작품이다. 후천적 지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미켈레가 동전을 모아 엄마 선물로 ‘가죽가방’을 내밀 때 눈물이 터지고 아빠와 여동생 산드라를 아파트 계단에서 기다리는 장면에서는 먹먹해진다. 포르쉐 ‘미니카’를 들고 가족이 웃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미켈레’가 있어 비로소 온전한 가족이 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가 그려진다. 연극< 앙상블>은 미켈레를 통해 못이 깊이 박힌 인간의 내면은 치유가 되어 온전한 앙상블을 이루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존재(存在)와 부재(不在)
무대는 아파트 내부 응접실이 보이는 사실적인 공간이다. 싱크대와 탁자 등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아파트 계단으로 이어지는 문이 연결되어 있다. 벽면으로 이어지는 창문을 통해 외부 전경(全景)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구조다. 미켈레 방 공간은 산드라의 집과 극 중 장면의 멀티 공간이 된다. 미켈레 일과는 산드라와 아빠를 기다리면서 이자벨라(엄마)와 낱말 맞추기를 하거나 퍼즐게임을 즐기는 정도다. 연극은 아들과 생활용품을 사서 8층 계단을 올라오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영수증과 물품들을 확인하는 사이 10년 만에 딸 산드라가 찾아오면서 극은 흥미롭게 전개된다. 산드라는 결혼을 통보하고 오빠의 결혼식 참석을 거부하고 장애 시설에 맡기라고 한다. 산드라에게 지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오빠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무형(無形)의 존재로 인식되며, 산드라의 내면은 과거로부터 기인(起因)한다. 오빠를 정상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자벨라의 헌신적인 사랑은 산드라에게 만큼 ‘자신의 머리카락을 몽땅 잘라버린 지적장애를 가진 오빠’이며 가족으로부터 격리되어 장애 시설에 맡겨져야 할 대상이 된다. 지적 발달 성장이 멈추어 인간의 자아가 부재해 사회가 보호해야 할 혈연적 관계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미켈레 존재를 통해 이지벨라와 산드라가 과거로 부터 전이(轉移) 되어온 아픈 상처를 도려내고 심리적인 화해를 통해 온전한 가족으로 앙상블을 이루며 치유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데, 그 삶을 100분 정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의 마음도 미켈레의 가족이 되고 만다.
작품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정상적인 인간으로의 존재는 엄마 이자벨라와 통신회사에 다니며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커리어 우먼 같은 산드라로 인식된다. 그러나 비정상적이면서도 정상적인 인간의 존재로 삶의 감동을 주는 것은 미켈레다. 존재함으로써 타자의 부재는 삶으로, 행복으로 존재한다. 특수학교 교사로 발령 받기 전 우연한 기회로 산드라의 파마텔 통신 면접시험을 보게 되는 극 중 장면에서 클로디아(한은주 분)는 동생과 산드라가 같은 학교에 다녔던 기억을 꺼낸다. “좀 장애가 있었던 오빠도 있었잖아요. 그 오빠 생생하게 기억해요. 학교 다닐 때, 오빠 때문에 우리 진짜 배꼽 빠지게 웃었었는데!” 클로디아에게 미켈레는 발달장애를 가졌으면서도 잊지 못하는 존재의 대상이 되며 한국 사회 발달장애인들의 사회적 시선이 병치(倂置)되어 바라보게 한다. 산드라에게 오빠의 존재는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나타나며 이자벨라에게 아들 미켈레는 폭력적인 남편으로 인해 계단으로 굴러 떨어져 지적 성장이 멈추어진 이전 삶과 시간 속에서 성장하지 않는 아들의 행동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연히 일어난 계단 사건으로 남편은 죽음으로 부재하지만, 폭력적인 남편과 아이의 사고는 거세할 수 없는 무형의 존재로 기억된다. 아빠의 양복과 하얀 셔츠를 챙겨 입고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러 가는 미켈레를 향해 이자벨라는 셔츠를 장난스럽게 찢어버리는데 여전히 아이로 존재하게 된다.
연극<앙상블>의 극 중 인물들(이자벨라 미켈레, 산드라) 내면 에는 아버지, 폭력적인 남편과 죽음, 사랑의 부재와 결핍, 부성(父性)의 부재가 균열되어 나타나고 정신적인 분열은 비로소 비정상적인 아들을 통해 온전한 치유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과거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은 견딜 수 없었던 남편의 폭력이 무의식의 내면으로 존재하고 있다. 어린 미켈레와 계단으로 굴러 떨어져 남편은 죽음으로 아들은 지적 상태의 발달이 멈추어진 과거 시간으로 정신적 해방이 될 수 없는 도려낼 수 없는 참혹한 기억들이다. 그러나 사회적 시선으로 비정상적인 미켈레의 존재로 인해 이자벨라와 산드라는 상처로 패인 내면이 치유되는 과정을 거치며 부성의 부재로 인해 삶은 존재하게 된다. 미켈레가 반복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아빠의 기다림이다. 이자벨라에게 남편은 아이를 다치게 한 폭력적인 남편이었고 산드라의 성장에서 아빠는 부재해 있는 존재다. 그러나 미켈레만이 오늘도 아빠가 올 거라 생각하고 계단 사건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있다. 아파트의 문과 계단 사이에서의 반복적인 기다림은 사고가 난 뒤에도 30대가 되어가는 동안 미켈레가 일상생활처럼 보이는 행동들이다.
미켈레의 멈추어버린 부성의 기억은 포르쉐미니카의 애착으로 존재되고 있다. 아들을 향한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은 산드라에게 가족의 부재와 사랑의 결핍으로 드러나 그 원인이 오빠 미켈레로 향하게 되며 가족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무형의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산드라는 엄마를 향해 “오빠가 내 모든 걸 훔쳐 갔어! 엄마의 사랑도, 아빠의 사랑도 다 훔쳐 갔다고!”라고 소리친다. 산드라는 과거부터 오빠로 인해 가족의 모든 사랑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하고 “오빠는 보살핌이 필요해. 엄마는 정상이 아냐. 엄마는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었지만, 오빠는 아프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자벨라한테 미켈레는 여전히 정상적인 아들이다. 미켈레의 후천적 지적 장애는 아빠로부터 기인한다.(중략) “자기 마누라를 때리는 쓰레기였단다.(중략) 미켈레가 날 보호해 주려고 내 앞을 가로막았어. 네 아빠가 걔를 밀쳤는데, 둘 다 계단 아래로 떨어졌단다. 그래서 너희 아빠가 죽은 거야”. 이자벨라에게 폭력적인 남편은 어린 아들을 밀치다 계단으로 굴러 떨어져 남편은 죽음으로 아들은 후천적 지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면서도 엄마를 보호하려다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죄 의식은 어린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나게 된다.
아들을 정상인으로 바라보는 이자벨라의 내면은 과거 계단 사건 이전 시간이 멈추어져 있다. 사건을 기억할 수 없는 미켈레의 아빠의 부재는 여전히 문을 열고 안아 줄 것 같은, 기다리면 돌아올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이러한 행동들은 미니카와 양복, 하얀 셔츠의 무의식적인 집착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아빠를 기다리는 미켈레의 반복적인 집착과 행동을 통해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전이되고 산드라의 결핍된 사랑의 부재도, 이자벨라의 아픈 기억도, 미켈레를 통해 치유됨으로써 비로소 이자벨라도 36살이 된 성인 미켈라 생일날 아빠가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말해 줌으로써 과거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산드라도 엄마와의 화해를 통해 장애를 가진 오빠로 인해 행복해 질 수 있는 가족의 앙상블을 이루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이자벨라와 산드라가 사 온 동일한 포르쉐 미니카이다. 그 사이로 미켈레는 방에서 꺼내온 또 하나의 포르쉐 미니카를 들어 보인다. 마치 계단사건 이전 아빠가 미켈레한테 선물한 미니카 처럼. 연극 앙상블은 용서와 화해를 통해 남편의 폭력성과 죽음을 가슴으로 도려내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이자벨라도, 산드라의 사랑의 결핍과 아빠의 부재도, 비정상적인 미켈레를 통해 치유되어 온전한 가족이 되어가는 연극이다.
극단 산울림 , 소극장 산울림의 고전극장
극단 산울림은 임영웅 연출을 주축으로 창단 준비 공연으로 <덤웨이터>(헤롤드 핀터, 1969)을 선보였고 이듬해 <고도를 기다리며>(1970.10)를 창단 공연으로 올리면서 한국 연극 소극장운동의 대표적인 극단이 된다. 김성옥, 함현진, 김인태, 김무생, 김용림, 사미자, 윤소정, 윤여정, 손숙, 최선자 등이 극단 산울림의 창단 단원으로 활동했고 소극장 산울림(1985)이 공연 전문소극장을 홍대 입구 신촌에 세우면서 개관 1주년 공연으로 <위기의 여자>(1986, 시몬드 드 보부아르 작) 박정자(모니끄), 조명남(모리스)으로 공연되면서 동아연극상 대상과 연기상(1987)을 받게 된다. 이 작품으로 소극장 산울림과 극단 산울림은 국내 페미니즘 연극의 출발을 알렸고 이후 모리스 역은 이주실, 윤여정, 손숙(그 여자) 등으로 바뀌며 대표적인 레퍼토리 작품이 되면서 최다 관객 동원 작품이 되었다. 연극 밀집 지역인 대학로 변방(邊方)에 있으면서도 소극장 산울림은 극단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이어가는 작품 발굴을 임영웅 선생의 아들 임수현 산울림 예술 감독(서울여대 교수)이 지속해서 해오고 있으며 채윤일, 심재찬, 채승훈, 이성열, 김광보, 박근형 등의 연출가들이 극장 산울림을 거쳐 간 대표적인 연출가들이다.
<산울림 고전극장>(2013)은 신진 극단들이 참여하면서 산울림 소극장 연극의 참신한 세대 교체와 작품을 발굴을 통해 지속해서 올리고 있다. <현진건단편선-새빨간 얼굴>(양손프로젝트, 민새롭 구성 연출), <변신>(극단 작은신화, 정승현 연출), <라쇼몽>(극단 여행자, 이대웅 연출) 작품들로 출발한 ‘고전문학’ 동시대 재해석을 통해 동서양의 고전문학과 작품들을 무대화하면서 산울림 고전극장 연극축제 운동을 지속시켜오고 있다. 임수현 교수는 “‘산울림 고전극장’ 축제는 고전의 재해석, 다양한 연극 소재의 무대의 활용과 고전이 공연되기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도 무대화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극장 산울림의 역할이고 묵직한 메시지로 풀어내는 산울림 고전극장 연극축제를 지속해서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창의적인 형태로 고전을 읽어보자는 취지의 산울림 고전극장 ‘문화예술축제’는 고전문학과 연극이 소외되고 있는 현실에서 연극을 지켜내는 극장 산울림 역할이 돋보이는 축제다. 고전을 시대적으로 무대화해 내는 신진연출가들을 발굴하고 고전문학과 작품을 알리고 있는 이 축제는 2022<우리고전, 우리 문화의 힘> 이라는 주제로 6월22일부터 8월28일까지 5개 단체가 참여해 수준 있는 고전문학을 무대화한다. 산울림 고전극장을 통해서만 만날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무대로 돌아온 심재찬 연출과 연극 <앙상블>
심재찬 연출은 무대로 돌아온 뒤 연극 연출가로 제2의 전성기를 보이고 있다. 연극행정가로 연극계 살림의 방향을 잡아 주었고 대구문화재단 대표이사를 거쳐 ‘2020 연극의 해’ 집행위원장을 마무리하고 무대로 돌아온 뒤 극단 산울림 50주년 기념공연<앙상블>(2019)과 신춘문예 단막극 전(2021)에서 <강신무>(한국일보 신춘문예당선작,1990)를 30주년 특별전 연출을 맡으면서 여전히 무대를 그리고 지켜내는 노장의 힘을 보여주었다.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으로 한국 연극의 리얼리즘의 대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만선>(천승세 작)을 통해서는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결을 살려내면서도 희곡을 현대적인 미장센으로 그려내며 감각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심재찬 연출가는 차범석, 임영웅 선생의 80년대 조연출 시대를 거쳐 극단 ‘전망’을 창단하고 본격적으로 연출을 하던 90년대를 지나 다시 무대로 돌아온 요즘 연출하는 무대가 살아나고 그의 말대로 “이제부터 연극을 제대로 하는 것 같아 연출로 역주행하는 전성기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 정도로 그가 만들어내는 연극<앙상블>은 관객들의 관심으로 극장은 살아나고 작품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로 잔잔한 감동의 선율로 무대의 앙상블을 그려내고 있다.
다양한 작품을 뚝심 있게 번역하고 있는 임수현 예술 감독이 있어 가능하고 1985년 개관 후 줄곧 소극장 산울림 연극을 그려내는 작품이라 소중하다. 희곡이 탄탄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이자벨라 가족의 리얼한 전경을 정경순, 유승락, 배보람, 한은주 배우들 연기의 앙상블로 고스란히 녹여내고 묵직한 감동을 주는 연극이다. 특히 배우 유승락은 후천적 지적 장애를 가진 미켈레의 내면과 캐릭터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의 인물로 그려내며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로 분한 조승우, 맨발의 기봉이의 신현준과 무대에서 결이 다른 연기를 보여주었다. 연극 <앙상블>은 추천하는 연극으로 꼭 볼만한 작품이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sid1=all&arcid=0017008961&code=6117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