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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발달장애인 가정의 갈등…‘지지고 볶는’ 우리네 모습 보이네
    • 작성일2022/04/10 15:58
    • 조회 341

    소극장 산울림 연극 ‘앙상블’
    3년 만에 재공연…5월8일까지

    극단 산울림이 연극 <앙상블>을 7일 개막해 다음달 8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구성원 중에 지적 장애가 있는 가족이 겪는 감정의 파동을 다룬 이 연극은 파비오 마라의 동명 작품이 원작이다. 소극장 산울림 제공

    극단 산울림이 연극 <앙상블>을 7일 개막해 다음달 8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구성원 중에 지적 장애가 있는 가족이 겪는 감정의 파동을 다룬 이 연극은 파비오 마라의 동명 작품이 원작이다. 소극장 산울림 제공

     

    집 나갔던 딸은 10년 만에 돌아와 엄마를 책망한다. “이게, 다 엄마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러면서 현실을 직시하라고 다그친다. “엄마, 오빠는 아프다고. 오빠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냐.” 엄마는 그런 딸에게 되묻는다. “통신회사에 다닌다면서 10년 동안 전화 통화 안 하는 건 정상이냐”고. 딸에게 이어 던지는 질문. “뭐가 정상인데? 어떤 게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누가 결정하냐고.”

    홍익대 앞 소극장 산울림이 지난 7일 연극 <앙상블>을 개막해 다음달 8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2019년 창단 50돌을 맞아 초연해 호평받은 작품이다. 연극은 구성원 중에 지적 장애가 있는 가족이 겪는 감정의 파동을 다룬다. 극본의 필치가 덤덤하고 잔잔하되, 무겁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는 평범한 대화와 일상의 장면들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유럽에서 주목받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파비오 마라의 동명 작품이 원작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한국적이다. 이 연극이 번역돼 무대에 올려진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10여개 나라의 관객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 바로, 우리들의 얘기라고. 특수한 소재를 통해 다루는 주제가 지극히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연극 <앙상블>은 결국 가족의 소통에 관한 얘기니까.

    개막 공연에서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였다. 엄마 이사벨라 역이 배우 예수정에서 정경순으로 바뀌었을 뿐, 딸 산드라(배보람)와 아들 미켈레(유승락), 교사 클로디아(한은주)의 배역은 2019년 공연 때와 동일하다. 7일 간담회에서 연출가 심재찬(69)은 “배우 한명 바뀌었는데 초연 때와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라며 “소탈하고 털털한 성격 그대로 지지고 볶는 게 가능한 정경순의 스타일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소극장 산울림이 7일 개막한 연극 <앙상블>은 2019년 극단 창단 50주년 기념으로 초연했던 작품이다. 소극장 산울림 제공

    소극장 산울림이 7일 개막한 연극 <앙상블>은 2019년 극단 창단 50주년 기념으로 초연했던 작품이다. 소극장 산울림 제공

     

    도덕주의와 거리가 멀고 훈계조가 아니란 점도 이 연극의 미덕 중 하나다. 엄마와 딸은 애증의 소용돌이 속에서 격하게 부딪치지만 폭발 일보 직전에 감정의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 멈춤이 오히려 연극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엄마와 딸의 대화엔 살짝 유머 코드가 스며 있는데, 작품 발표 당시 35살이었던 원작자가 쓴 심리묘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 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 미켈레가 벌이는 엉뚱한 소동은 배시시 웃음도 자아낸다. 아들이 연출한 희극적 상황에 관객들은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저 해맑게 웃기엔 소재가 무겁다. 작품을 번역한 임수현(57) 서울여대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한 원작자의 의견을 이렇게 전달했다. “관객들이 미켈레의 행동에 대해 무심하게 웃지 않고, 그와 함께, 같은 감정으로 공감하며 웃었으면 좋겠다.” 미켈레로 분한 배우 유승락의 절제되고 섬세한 연기는 관객들이 자칫 가볍게 치부해버릴 수 있는 장면들을 경솔하지 않게, 동시에 어색하지 않게 이끈다. 작품은 최근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인 장애인 이동권 문제도 떠오르게 한다.

     

    원작은 2017년 프랑스 최고 권위 연극상인 ‘몰리에르상’을 받았다. 소극장 산울림의 예술감독이기도 한 임 교수는 “프랑스에 정착한 작가의 작품인데 한국 사회가 요즘 맞닥뜨린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며 “그래서 이질감 없이 다가온다”고 말했다.

     

    연극 <앙상블> 포스터. 소극장 산울림 제공

    연극 <앙상블> 포스터. 소극장 산울림 제공

     

    엄마와 딸의 갈등은 아들 미켈레의 특수시설행을 두고 최고조에 이른다. 모녀의 팽팽한 대립은 딸의 의견대로 미켈레가 집을 떠나지만, 그것 또한 모범답안은 아니란 사실을 두 사람이 인지한 뒤에야 비로소 해소의 계기를 맞는다. 연극의 정점에서 딸이 몰랐던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는데, 봉인된 이야기가 풀리면서 새로운 차원의 대화가 시작된다. 심재찬 연출은 “초연 때는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만으로도 ‘앙상블’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정한 ‘앙상블’이란 인물 각자가 사건을 통해 변화하고 성숙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 다시 만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연극의 마지막은 엄마와 딸, 아들의 포옹으로 마무리되지만, 갈등의 해결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 지점에서 다소의 비약도 엿보인다. 임 교수는 “원작자는 의도적으로 결말에 앞서 3개월이란 시간을 축약했는데, 아마도 거기엔 많은 얘기가 생략돼 있는 것 같다. 그 시간을 따져보는 것은 어쩌면 관객의 몫일지 모른다. 결국 갈등 해소보다는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에 중점을 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