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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셰프가 싱싱한 생선 반기듯, 이 엄마 이야기에 끌렸어요”
    • 작성일2022/04/0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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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경순은 연극 ‘앙상블’에 대해 “가족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갈등과 애증의 양상을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그린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배우 정경순은 연극 ‘앙상블’에 대해 “가족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갈등과 애증의 양상을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그린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다른 직업은 할수록 수월해진다는데 연기는 그렇지 않아요. 이 극장에선 더 불안해요. 관객이 1~2m 앞에 있고 내 손 떨리는 것까지 다 볼 테니까요.”

    배우 정경순(59)에게 홍익대 앞 소극장 산울림은 특별하다. 건달을 사랑한 여의사를 연기한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영화 ‘약속’의 원작)는 1996년에 3개월간 흥행하며 동아연극상을 안겼다. 1998년 ‘엄마, 안녕’에서는 어미 가슴에 못을 박는 딸로 관객을 울렸다. 연극 ‘앙상블’(파비오 마라 작·심재찬 연출) 개막을 앞두고 만난 정경순은 “24년 만에 이 소극장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엔 내가 엄마가 돼 독한 딸을 상대한다”며 웃었다.

    ‘앙상블’은 2017년 프랑스 몰리에르상 수상작이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미켈레(유승락)를 돌보는 이자벨라(정경순)에게 집 나갔던 딸 산드라(배보람)가 10년 만에 나타나면서 소용돌이치는 드라마. “아픈 오빠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냐. 현실을 인정해야 해”라는 딸에게 이자벨라는 “정상과 비정상을 누가 결정하는데? 가족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건 정상이니?”라며 숨겨온 비밀을 고백한다.

    “오해가 쌓이며 오랫동안 침묵한 엄마와 딸이 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예요. 가장 가까우면서도 때로는 제일 먼 관계가 가족이잖아요. 셰프가 싱싱한 생선을 만난 것처럼 끌렸습니다.”

    장애를 가진 오빠에게만 관심을 쏟는 엄마(정경순)를 원망하며 집을 떠났던 딸 산드라(배보람)는 10년 만에 돌아와 결혼 소식을 알린다. /극단 산울림

    장애를 가진 오빠에게만 관심을 쏟는 엄마(정경순)를 원망하며 집을 떠났던 딸 산드라(배보람)는 10년 만에 돌아와 결혼 소식을 알린다. /극단 산울림

    정경순은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83년 극단 신협의 연극 ‘수전노’로 데뷔했다. 이 인물, 저 인물에 세 들어 산 지 40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1994)에서 억센 죽산댁, ‘창’(1997)에서 늙은 창녀 미숙으로 청룡상 여우조연상을 2번 받은 1990년대 중반부터 충무로와 대학로가 주목한 배우였다. 2000년대 들어선 ‘황진이’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등 드라마에서 주로 활약했다.

    “50대 중반에 이르자 섭외가 뜸해졌어요. 올 것이 왔구나 했지요. 여배우는 40대가 엄마 역할까지 다 하니까 저는 원로 취급을 받아요(웃음). 너무 오래 쉬면 연기도 녹이 슬고 자신감이 떨어져요. 작년에 국립극단 ‘만선’에 이어 이렇게 무대에 설 수 있다는 데 감사해요.”

    소탈하고 활달한 성격이었다. “요즘에는 연기할 때 뭘 보태지 않고 거꾸로 덜어낸다”고 했다. “90년대에는 선이 굵은 연기를 요구했는데 언제부턴가 일상적인 연기가 각광받아요. 힘을 싣거나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배어나게 하는 거예요. ‘연기하지 않는 연기’가 사실 더 어려워요.”

    정경순이 24년 만에 홍대 앞 소극장 산울림으로 돌아왔다. /이태경기자

    정경순이 24년 만에 홍대 앞 소극장 산울림으로 돌아왔다. /이태경기자

    7일 개막하는 ‘앙상블’은 정상이란 무엇이며 차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묻는다. 정경순은 지적 장애 아들에 대해 “그가 엄마에게 의지한다기보다 엄마가 그에게 더 의지한다. 더 말하면 스포일러”라며 입을 닫았다. 연출가 심재찬은 “진정한 앙상블은 인물 각자가 어떤 사건을 통해 변화하고 성숙해진 뒤에 가능하다”며 “이 가족은 연극이 끝날 때쯤 진짜 대화를 하게 된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배우가 이런 글을 보내왔다.

    “이자벨라는 고통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여인이에요. 겪어내야 하는 그 지리멸렬한 삶에 한줄기 빛이 드리웁니다. ‘가족은 함께’라는 것, 서로를 위해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걸 잊고 살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오해하지 말고 그냥 사랑하자. 그 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예요.”

     

    박돈규 기자

    박돈규 기자